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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05 - 24 여러가지 생각


사방이 적이란 심성


1.

「참여정부계와 진보언론의 갈등이라는 신화 」





2

송준모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과 광범위한 진보진영 사이에서 나타나는 대립구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막상 벌어지니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조건은 마련되어 있었다. 연령별 지지율로 보자면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은 대부분 30대~40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이들은 참여정부 시기에 청소년~청년 시기를 보낸 사람들이다. 즉 대략 90~200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였다는 의미다.

이 시기는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폭발하던 새로운 사회적 욕구와 이를 해석하기 위한 담론들이 만개하던 시기이자, 동시에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분화되며 신사회운동이 등장함과 동시에 학생운동이 퇴조하던 시기이면서, 민주노동당이 정치적 흥망을 거치며 노사모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운동이 등장한 시기이다. 현재 진보진영을 규탄하는 열성 지지자들은 바로 그 진보진영의 주요 세력들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셈이다. 그들은 학창 시절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 현재 진보진영을 규탄하는 열성 지지자들의 행태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서, 신화화된 서사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들의 표준 서사에 따르면 노무현 정권은 386 운동 엘리트 네트워크로 한통속인 진보정당과 노동계의 발목잡기에 의해 실패하였고, 진보언론까지 가세한 마타도어에 의해 부엉이 바위로 내몰림을 당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은 신화다.


만약 진보세력이 노무현 정권의 발목을 잡을만큼 강렬했다면,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이명박에게 재갈을 물리는 데에는 왜 실패하였단 말인가(열성 지지자들의 주장대로 설령 진보세력이 노무현 정권을 싫어했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권에 대한 증오만 하겠는가). 아마 노무현은 민주적이라 발목을 잡혀주었다는 반론이 나오겠지만, 여명의 황새울을 기억하자. 나는 노무현 정권이 당시 추진하였던 정책들 중 일부는 필요한 일이었으며 진보세력의 반대가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나, 어쨌거나 그들의 역량을 과대평가하여 거대한 악으로 만드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다.


386 운동 엘리트 네크워크가 노무현과 문재인만을 따돌렸다는 주장은 황당한 수준이다. 대표적 친노 정치인이었던 이해찬과 유시민의 출신성분만 떠올려보더라도 쉽게 기각 가능한 주장이다. 참여정부 시기에 공적 영역에 진출한 시민사회 운동가들과 재야 학생운동권 출신들의 목록을 떠올려보자. 위원회 정치로 불릴 정도로 시민사회에 적극적인 문호개방을 한 정부가 바로 참여정부였고,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조직력과 전문성을 뒷받침하는 인재풀은 바로 이 시기에 제도권으로 유입된 경우가 많다. 학생운동 엘리트가 정치권에서 러브콜을 받는다면 자원을 가진 집권세력에게 가지 풍찬노숙하는 진보정당이나 노동운동에 투신할 확률은 적다. 당장 전대협과 같은 거대 학생운동 조직의 상층부 출신 정치인들의 당적을 보자.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이유는 스스로의 무능, 그리고 좀 더 유화적으로 봐주자면 보수세력의 저항 때문이었지 진보세력의 발목잡기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진보세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노무현 정부의 발목을 잡을 능력도 없었다. 만약 진보세력이 노무현 정부를 좌초시킬만큼 강력했다면 한미 FTA, 이라크 파병, 평택 미군기지 이전 등은 어떻게 통과되었으며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등은 왜 좌절되었을까? 이제와서 노무현에게 미안함을 느끼는건 좋은데, 당시 노무현에 대한 판단 책임을 당시 자신의 두뇌가 아니라 가상의 적에게 떠넘기는 건 여러모로 황당한 발상이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진보진영이 보이는 모습들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다. 문재인 지지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현실정치에 대한 이해 없이 문면의 PC 에만 집착하는 소위 ‘정치홍대병’ 지지자들의 어리숙함과 여러모로 미숙한 정당 운영, 비정규직에 대한 외면과 각종 황당한 정책들 등 비판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며 꽤나 타당한 지적들도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 민주노동당의 위상은 현재와 달랐으며, 이명박 정부 당시 민주당의 위상 역시 현재와 달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즉, 현재 허섭한 정의당이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를 비난한다고 해서 과거 민주노동당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같은 성질의 것이 되는게 아니다.



- (진보세력에 대한)무임승차론은 수도권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세계가 상당히 자폐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애초에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이 왜 감옥에 있는지를 망각한 것 같은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내내 진보세력은 격렬한 투쟁을 해왔다. 만약 투쟁이 보이지 않았다면 진보세력에 이를 지속하고 홍보할만한 자원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지 보수정권에게 굴복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들의 투쟁 자체는 지속적으로 보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년간 잠잠히 있다가 정권교체가 되니 무임승차를 하려고 한다는 주장은 평소에 자신의 안온한 생활세계와 분리된 영역의 일 자체를 기억회로에 저장하지 않는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삶은 분명히 존경할만 하며, 많은 고난을 겪어왔지만 진보세력의 운동가들이 겪은 고난은 결코 문재인 대통령의 아래가 아니다. 노회찬과 심상정, 권영길, 단병호와 같은 진보세력의 주요 지도자만 하더라도 변호사라는 번듯한 직업, 호남의 절대적 지지, 규모의 경제에 따른 정치자금, 밴드웨건에 의한 인재들의 지원과 같은 자원들을 결여한 채로 광야에서 없는 길을 개척해왔다. 탄압은 더욱 극심했다. 보수언론의 매도는 말할 것도 없으며 진보언론의 상대적 무관심(공정하게 말하자면 정권에 대한 비판자로서의 역할은 꽤나 호의적으로 다루어준 경우도 많았다), 정권을 가리지 않은 과격파 낙인찍기와 경찰력 투입과 맞서 싸워온 그들이다. 그 동안 사표론에 시달려온 진보세력이 몇마디 한게 그렇게 큰 ‘피해’ 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진보세력을 과격파라고 비난했을 때의 피해는 얼마로 환산해야 할까?



-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언론계에 대한 린치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그동안 기성 언론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온 건 사실이다. 이는 독자들의 평균 학력수준의 상승과 언론의 정체와 관련되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존칭을 쓰지 않는다는 점 자체에 분개하는 주장을 거르고 본다면, 언론에 대한 비판의 상당수는 자격 없는 자들이 시민의 선택을 무시하고 팬덤을 비하한다는 인식 하에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는 분명히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완결된 형태의 글을 서술할 수 있으며, 전문직과 고위직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이 직업의 권위를 보증하는 독보적인 자원으로 남아있지 않다. 오늘날 서울의 왠만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논술시험을 통과하여야 하며, 이름을 들어본 대학을 다닌 사회인이라면 본인이나 친구들이 전문직 내지는 사회에서 나름의 관심을 받는 직장에 근무하고 있다. 즉, 기자는 더 이상 전문성을 갖춘 존재가 아니라 단순한(혹은 조악한) 스피커라고 인식될 조건이 마련되었다.


전문적인 사회과학적 분석력이 아니라 여전히 속보와 감성적 서술에 집착하는 언론사 내부의 구세대는 신세대를 새로운 기준에 맞추어 훈련시키지 않은 채 기존의 시민사회 내에서, 그리고 정치연합 내에서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당수가 대학원 교육까지 받은, 현재의 부장급 기자들이 대학에 다닐때보다 질적으로 훨씬 향상된 학부 교육을 받은 세대에게 있어서 기자들의 지적 권위를 찾기란 어렵다. 게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각자의 전문영역에 대한 언론의 몰이해들이 퍼즐을 맞추듯 공유되자, 언론이 가지고 있는 권위는 그야말로 파산에 이르렀다.


즉, 언론에 대해 시민들 상당수가 가지는 반감은 각자 동기가 다를지 모르나 상당부분은 언론 스스로의 책임이기도 하다. 사회가 더 합리화되고 대학교육에서 제공하는 학문의 질이 높아지고 있지만, 기자들 스스로는 80년대에 갇혀버린 수준의 조악한 인문사회과학의 틀로 현실을 재단한 채 취재원을 팔아 권위를 주장하며 안주하고 있었다. 정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역량 차이가 줄어들었지만 생산자가 계속 갑의 지위를 주장한다면 소비자의 반발이 나오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 언론에 대한 불만이 더 정밀한 분석을 향해 나아가는게 아니라, 아예 분석을 포기하고 정념만을 충족시키는 반대 방향으로 폭발하고 있는 건 우려스럽다. 현재의 언론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자격 없는 자가 계몽을 시도한다는 데에 있지 계몽 자체에 있는게 아니다. 여론에는 언제나 계몽이 필요하며, 계몽은 지적인 분석을 수행하는 전문성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은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지 아예 전문성을 내팽개치고 정파적 정념을 충족시킨다는 황당한 방향으로 가는 건 파괴적이다.


기자들의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무지를 비판하기는 하였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구축된 게이트키핑 시스템 안에서 요건에 맞추어 기획을 구성하고 취재를 하여 기사로 풀어내는 능력을 학습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대안이라고 나오는 친노 팟캐스트 네임드들을 보자.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의 직업윤리(?)를 가진 채 적대 정파에 대한 증오만을 설파하고 게이트키핑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가지지 않는 자들이 상당수다. 만약 기성 언론의 기자들이 쓰레기장으로 가야 할 ‘기레기’ 라면, 친노 팟캐스트는 지하 깊은 곳에 봉인해야 할 핵폐기물 쯤 될 것이다.


한겨레 21의 안수찬 기자가 말실수를 한 모양인데, 그가 예전에 쓴 “그들과 통하는 길 :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빈곤 청년의 실상” 은 친노 팟캐스트는 고사하고 ‘지식소매상’ 유시민도 범접할 수 없는 좋은 글이다(사실 난 유시민의 글이 좋다고 느낀 적이 한번도 없다. 그의 글은 대부분 학부기초 수업만 들어도 쓸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수찬 기자에 비해 훨씬 더 잦은 빈도로 더욱 심한 막말을 뱉고 있는 친노 팟캐스트 진행자들은 비난도 받지 않고 좋은 기사를 쓴 적도 없다. 물론 안수찬 기자는 더 많은 힘과 자원을 가지고 있기에 그에 대한 책임을 더 무겁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팟캐스트가 가지는 책임성과 전문성의 문제는 과연 그들이 기성언론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재고해보게 만든다.








2017 - 05 - 19 여러가지 생각


1. DJ-참정 시절 정권 실세들 잡아넣던 윤석열이 최순실 사태를 거쳐 친노파인 문재인 행정부에서 영전하다니 세상 참 많이도 변했군





2.



“문재인 대통령 잘할 것” 87%… 역대 최고치"

"로이터는 문 대통령이 높은 인기를 이어가려면 일자리 창출과 복지, 재벌 개혁, 북핵 위기 해소 등 대선 핵심 공약을 현실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서울 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더를 인용해 “지난날 한국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비난 속에 퇴임해야했다”면서 “최소한 문 대통령은 그런 흐름을 멈춰 세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건 둘때치고 TK 에서도 ... ㄷㄷㄷ











2017 - 05 - 18 트위터 이야기









2017 - 05 - 17 여러가지 생각


 어용 지식인, 어용 언론이 되겠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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